여호와 앞을 떠나서
창세기 4:16~24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4: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4: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4: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l 자식과 아내를 통해 드러난 욕망
l 교만한 자신감
l 하나님을 떠난 인생
카인의 후예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이전에는 카인의 피가 흘렀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카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카인의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벨과 같은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묵묵히 하나님만 예배하는 사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상한 것으로 자랑하는 사람들
리썰 웨폰(Lethal Weapon, 치명적 무기)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멜깁슨이라는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준 형사물인데,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4편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3편은 경찰 내부의 비리를 좇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이 수사를 진행하다가 경찰의 비리를 내사하던 여형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둘이 데이트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데,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워왔던 두 사람은 위험을 통해 얻게 되었던 자신들의 상처를 자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팔, 다리, 어깨와 등에 각종 흉기에 찔리고 총에 맞은 자리를 자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스하키나 미식축구를 하는 선수들 중에는 거친 플레이로 이빨이 부러지고, 뼈가 부러졌던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하기만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용감하고 남성다운 훈장이요, 자기를 증명하는 상징처럼 느껴지는가 봅니다.
지난 2009년 5월24일 오후 6시45분경입니다. 그날은 비가 몹시 내리는 주일이었는데, 저는 준혁이와 김선연 권찰과 함께 소프트뱅크에서 우리 아들의 생애 첫 번째 핸드폰을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우리는 이런저런 핸드폰을 구경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김선연 권찰이 준혁이에게 말했습니다.
“핸드폰 학교에 가져가면 안돼!”
“알아요. 하지만 나 수업시간에 껌도 씹었어요.”
“난 수업시간에 김치 꺼내서 밥도 먹어봤다. 그래도 안 걸렸지…”
“우와~ 어떻게 김치를 먹는데 안 걸려요?”
“그뿐이냐? 만화책도 많이 읽어봤다.”
“에이~ 만화책이야 당연히 읽죠.”
살아가다 보면, 실제로 사람들마다 자랑하는 것이 아주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자랑하는 것은 훌륭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 중에는 절대로 훌륭하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자기가 거칠고 싸움을 잘한다고 자랑하거나, 성격이 까다롭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입맛이 까다로워서 반찬투정을 잘한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어떤 유명한 사람을 안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흔히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러한 자랑은 그 사람이 진실로 무엇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가를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랑하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것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흘려 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 밖의 것을 자랑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세상이 보는 우리의 신앙이란,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을 통하여 보다 많이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말을 할 때마다 항상 초점은 ‘돈’이 된다고 합시다. 그의 자랑은 온통 돈을 버는 방법과 자신이 얻은 이익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고, 자기를 치장하는 많은 것에 대하여 열띠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에 대하여 세상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자랑을 통해 그가 가진 마음의 상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자기들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자기의 삶에 대한 신앙적 고백들로 살아간다고 합시다. 그는 좋은 교회를 자랑하고, 목회자를 자랑하고,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자랑하고, 구원의 기쁨을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세상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입니다. 너무 이상해서 자기들의 삶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신앙’이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카인의 가문이 가진 자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의 것보다 예수님 밖의 것들을 자랑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소유를 자랑하고, 학벌과 출신을 자랑하고,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기의 세상 사랑을 부끄러움도 없이 자랑합니다.
본문에는 아벨을 살해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카인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카인은 하나님 앞을 떠난 후에, 에녹을 낳았습니다. 누구와 결혼을 했느냐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 사람의 수명이 천 년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바는 세월에 답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근친과 결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내인 사라와 사촌지간입니다. 카인이 에녹을 낳고, 성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성’이라는 것은 ‘도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최신의 문화를 집약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르네상스(문예혁명)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즉흥적인 감정에 의하여 동생을 살해한 카인이지만, 그가 결코 무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실로 세상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히 무능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카인의 불행입니다.
카인은 이 도시에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업적을 대대손손 남기기 위하여 그는 그 도시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비록 아들의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카인의 마음과 흐르는 세월 가운데 망각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정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을 떠나게 되었던 카인은 그런 식으로 자기 마음의 상실감, 곧 하나님의 빈자리를 채웠던 것입니다.
에녹 이후에 몇 명의 자손을 거친 이후에, 카인의 후예에서 아주 걸출한 인물이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라멕입니다. 라멕은 고대의 영웅입니다.
그는 19절에 보니, 야다와 씰라를 아내로 두었습니다. 야다는 ‘노래’라는 뜻이고, 씰라는 ‘아름답다’는 뜻이 담긴 이름입니다. 보통 고대의 기록에는 여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주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여자의 경우에만 기록에 여자의 이름이 남습니다. 그러니까 야다와 씰라는 당시의 스타입니다.
20절을 보니, 야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축을 돌보는 일은 이미 아벨의 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다만 야발이 특별한 것은, 자급자족을 위한 가축 사육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으로서의 목축업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대단한 사람입니다.
21절을 보니, 그 동생은 유발입니다. 유발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악기를 설계하고,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음악의 근간은 찬양입니다. 고대 모든 음악은 제사에 사용되는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발이 그 음악을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변모시키고 유행시키게 됩니다. 어머니 야다의 재능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당시로서 엔터테이너에 대중적인 스타였던 것입니다.
22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씰라가 두발가인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그는 동과 철로 날카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을 살피면,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와서 이스라엘은 겨우 청동기를 벗어나 철로 무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까마득하게 먼 시절에, 카인의 자손들은 동과 철을 다룰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들어낸 기계는 농기구뿐 아니라 분명히 전쟁에 쓰이는 무기였을 것입니다.
23절에 라멕이 ‘상처’를 자랑합니다. 그 상처에 대한 보복으로 라멕은 사람을 죽였다고 아내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자비하고,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그리고 재능과 머리에서 뛰어난 이 라멕의 가문은 그야말로 당시에 천하무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라멕은 24절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의 할아버지 카인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벌은 일곱 배이지만, 나 라멕을 위해서 정해진 벌은 칠십칠 배이다!”
이 말은 정말 교만한 말입니다. 그는 우선 자기의 조상인, 카인보다 자기가 더 대단하다고 뽐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곱 배의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보다 칠십칠 배의 벌로 보복할 수 있는 자기의 능력이 더 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眼下無人)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손에 가진 사람의 자랑입니다.
라멕의 허상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자 라멕의 가문도 몰락해 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을 모으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권력을 가졌지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며 살았지만, 그래도 세월은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일주일 만에 창조되었냐고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의 관점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하루가 무엇입니까? 24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24시간은 지구가 한 바퀴를 자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그 지구를 돌리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멈추면 시간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가 어떻게 천 년이 못 되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달라 늙지 않으시고, 죽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부분의 일이 우리의 시각으로는 느리게만 보이는 이유입니다.
라멕이 하나님 앞에서 까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조롱하며, 자기의 가문을 단합시켜서 자기의 자랑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위세는 대단했고, 적어도 당시에는 아무도 그를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멕을 상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돈을 자랑하든지, 자식을 자랑하든지, 권세와 재물을 자랑하든지 실컷 자랑하고 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아무도 라멕을 상처 입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서서히 라멕을 죽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월입니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를수록 라멕은 조급해졌을 것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중국이라는 대륙을 얻은 이후에 ‘불로초(不老草)’라는 영약을 찾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높이 올라갈수록 급히 떨어지게 됩니다. 가지지 않은 사람은 내려놓는 것이 쉽지만, 많이 가진 사람은 그것을 포기하고 죽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라멕도 죽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가 만든 도시, 그의 업적, 그의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는 죽기 싫다고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자녀들은 그를 대단히 엄숙하고 거창하게 장례 했겠지만, 그러나 과연 그것이 라멕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자랑은 당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유명한 사찰에서 납골당을 선전하는 것이 나옵니다.
상자마다 크리스털로 부처가 새겨져 있고, 안에는 LED 등이 들어 있어서 오색의 빛을 쏟아냅니다. 유족이 찾아와서 부여된 키를 넣으면, 온통 파란 부처들 중에서 자신의 부모가 모셔진 상자만이 빨간 등으로 바뀝니다.
또한 모니터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사진과 동영상이 재생되어 추억을 돕습니다.
정말 훌륭한 시설입니다. 다만 좀 비쌉니다.
그 한 칸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랑은 과연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옛말에 돈은 고생해서 벌어서 쉽게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하면,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벌고, 쓰는 그 사이에 뭔가 허전함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세월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보약 많이 먹으면 오히려 죽을 때에 고생을 한다고 합디다. 떠날 때는 떠나야 하는데, 그놈의 보약이 끈질기게 힘을 보태어서 쉽게 죽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약만 그러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랑에 대한 교훈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유익하며, 교훈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고전 1:26~31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 지혜를 드립니다.
허망한 자랑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가져봐야 소용도 없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습니다. 믿음만이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독이 됩니다.
카인이나, 라멕처럼 살고 죽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카인과 라멕의 세상에서 우리가 살지만, 그러나 기죽지도 말고 닮아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허망한 최후를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돈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서도 왜 그들처럼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에만 안타까워합니까?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십니까? 우리가 정말 가져야만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 하나입니다.
대충 교회나 나오는 믿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고 참된 안식과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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