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무현!
- 노무현을 회상하다 (1)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노’씨가 둘 있다.
한 편은 ‘물태우’ 혹은 ‘노가리’로 불렸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전두환과 함께 나란히 대통령을 했고, 그 또한 어마어마한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지금까지 29만원 밖에 없다고 버티며 얼굴 두꺼운 인생의 최고봉을 보여주고 있는 전두환에 비하여 그는 뭔가 어설프고 치졸한 감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전두환의 다크 카리스마에 비하여 노태우는 많이 빈약하다. 그래서 전두환이 미움을 받고 있다면, 노태우는 무시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이후에 두 번째 ‘노’ 대통령이 나왔다.
(두 ‘노’ 대통령으로 글을 여는 까닭은 노무현에 대한 첫인상이 노태우로 인하여 별로 안 좋았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훨씬 악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인물이라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노태우는 그야말로 ‘대통령’과 어울릴 수 없는 소인배의 인상이 깊다. )
처음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에만 해도, 그의 이름은 그저 5공 청문회의 스타 국회의원으로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저 화만 내었던 다른 국회의원들에 비하여 논리와 상식으로 따지는 젊은 노무현의 추궁은 많은 국민들을 환호하게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아무도 그를 대통령 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김영상, 김대중, 김종필의 3김 구도 속에서, 여의도 광장을 가득 채울 만한 청중 동원 능력이 없으면 대통령 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안에서조차 배경이 없었던 노무현이었고, 반대로 한나라당에는 이회창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일찌감치 맞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 국민들 앞에 서게 되었던 과정은 그 자체가 드라마였다.
우리 나라에서 정치는 돈을 쓰는 행위였다. 그래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막대한 재산을 벌어 두었고, 때문에 한 번 권력을 잡기 위해 돈을 쏟아 부을 만하다는 것을 의미했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반대였다. 그는 이미 오랜 원외생활로 그 자신이 빚쟁이였다. 사람들을 동원할 힘도, 돈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올곧은 삶과 비전이 사람들을 움직이며, 소위 ‘노사모’라는 열렬한 조직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노사모’는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을 위해 시민들이 그처럼 자발적인 헌신과 호응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본 경험이 대한민국에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항상 밥을 사고, 돈봉투를 나눠주고, 선물을 보냈다. 그러나 노무현과 노사모는 바로 그런 한국의 정치풍토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던 것이다.
누군가 열렬히 반응하면 반드시 그 반대편에 서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항상 노무현에 감동하고, 노무현을 위해 헌신하는 노사모의 열정은 이러한 반작용도 불러왔다.
더러 노무현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조차 노사모라는 열렬한 조직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등을 돌린 일이 많았다.
아마도 이러한 반감의 정체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무의식이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단체 이외에 열렬한 사조직은 언제나 ‘반공’의 희생제물이 되곤 했다. 수없이 덧칠해진 빨간 색이 대부분 날조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 시대를 살며 그런 언론을 듣고, 읽었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무의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노사모의 정치참여는 그야말로 근대사는 물론 이후 우리의 미래에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학적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것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노사모의 바람이 민주당 경선의 승리를 가져왔고, 노무현을 이회창과 경합하게 하는 거대한 인물로 세워 갔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노사모만의 힘으로 대통령이 만들어지기에는 대한민국의 그늘이 너무 짙었다.
그 역사적 투표에 참여했던 한 개인으로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단지 노사모의 바람만을 등에 업고 대통령 선거를 치루었다면 노무현은 이회창에게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다. 선거 하루 전에 함께 민주당의 경선을 치루었던 정몽준이 배반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노무현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였다. 물론 이회창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기분 좋은 전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열한 선택이 오히려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선거일에 놀러 가려고 했던 젊은 세대들이 일찍부터 투표장으로 향했으며, 또한 노무현이 불쌍하고 정몽준이 화가 나서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도 많았다.
만약 정몽준의 배반이 2~3일만 빨랐어도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사건은 해석에 따라서 달리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라는 절묘한 시간이, 보수언론과 정치적 왜곡으로부터 노무현을 보호했다.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는 그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사람들은 느끼는 대로 이해했고, 이해하는 대로 선택했던 것이다.
아무런 계파가 없었던 노무현이 민주당의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지금에서 생각해도 기적이다. 마치 하늘이 그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세우려고 작정하신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5월 29th, 2009 at 2:17 오전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일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 현장에 나가 보았을 것이다. 갈 수 없는 처지라서, 며칠을 못 잤던 마음 고생을 그냥 버릴 수 없어 글을 좀 쓰기로 했다.
이것저것 밀린 숙제가 많지만, 누군가를 위해 증인의 심정으로 몇 마디 적어 두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보고 생각했던 극히 개인적인 관점과 생각이다. 이 점을 미리 양해 구하는 바이다.